[천자 칼럼] 사막서 자라는 한국 벼

입력 2020-06-07 18:43   수정 2020-06-08 00:21

1860~1870년대 조선에 가뭄과 기근이 잇따르자 함경도 농민들은 두만강을 건넜다. 북간도와 연해주 일대에 터를 잡은 이들은 땅을 개간해 논밭을 일구고, 천신만고 끝에 벼농사까지 성공했다. 현지인들은 논에 물을 채우고 벼를 재배하는 수전(水田)농법을 보고 탄복했다. 이후 한인 이주가 늘었다. 시인 윤동주 증조부도 1886년 북간도로 옮겼다.

연해주로 간 한인들은 한때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하는 아픔 속에서도 경작지를 꾸준히 넓혔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한국 기업들이 대규모 농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의 연해주 농장(약 6700㏊·2000만 평)은 롯데상사가 인수해 재배 작물을 늘리고 있다. 연해주 사람들은 한국 농기계의 첨단 기능과 비닐하우스 농법 등에 찬사를 보내며 투자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

한국의 뛰어난 농법은 아프리카에도 전파됐다. 세계적인 육종학자 김순권 한동대 석좌교수가 1979년 나이지리아로 날아가 17년간 옥수수 종자를 개발하며 식량난을 해결했다. 이 공로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세 번, 노벨생리의학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올랐다. ‘검은 대륙의 옥수수 추장’으로 불린 그는 몽골, 미얀마 등에도 새 종자를 보급하고 있다.

최근에 한국 농업의 위상을 드높인 곳은 중동 지역이다. 국토의 97%가 모래밭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한국 벼를 수확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쌀 한 톨 나지 않는 이 나라에 한국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벼 ‘아세미’를 파종한 것은 지난해 11월 말. 보름 만에 싹을 틔운 벼에 땅속 호스로 물을 공급하며 6개월간 공을 들인 끝에 마침내 첫 쌀을 수확했다.

한국은 아프리카의 세네갈과 말라위 등에서 5개 품종의 벼를 개발했고, 케냐, 우간다 등 19개국에서도 신품종 개발을 진행 중이다. 중남미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등 5개국에 한국식 첨단 농법을 전수하고, 전 세계 개발도상국 연구원 1100여 명을 초청해 ‘K농업’ 노하우를 가르치고 있다.

차가운 동토(凍土)에서도 수전농업을 일궈낸 한국인의 저력이 이제는 열사의 땅까지 ‘황금 들판’으로 바꾸고 있다. 사막에서 수확한 쌀이 국내 재배 때보다 40%나 많다니 더욱 놀랍다. 이대로 가면 한국 벼 재배국이 한국 쌀 수입국(50개)보다 늘어날 수도 있겠다. 이문 또한 ‘쌀 수출’보다 ‘종자 수출’에서 더 많이 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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